주석 3: 개입을 이해하기

인류의 동행자 보고서는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의문들은 꼭 필요하고 숙고해야 하므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괜찮다. 이것은 단지 답변만 선뜻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의문들이 깊이 숙고되어야 하고, 그 답이 무엇일지 질문자가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가 큰 공동체에서 언젠가 강해지고 자결권을 지니려면, 독립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사물을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동행자들 자신은 여전히 신비한 채로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동행자들은 개입을 염탐하고 있으므로, 자신들을 보호하려면 숨어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동행자들 자신은 자신들의 출신지, 신원 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 정보가 사람들에게 무의미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동행자들이 자신들의 익명성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익명성을 통해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출처를 보호한다.

사람들은 큰 공동체 삶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처음에는 어쩌면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앎이 한 종족에서 다른 종족으로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 특히 개입과 같은 상황이 진행 중일 때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인류는 포위당했다고 할 수 있다. “방문자”들의 활동이 너무 미묘하여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어쩌면 이 말이 너무 강한 표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개입의 결과를 고려할 때, 여기서 “포위”라는 단어는 정말 적절하다.

만약 포위된 다른 나라를 돕고자 하고, 동시에 숨어 지내야 하면, 당신은 자신과 자신의 출처를 보호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든 정보가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메시지가 한 사람에게 전달된다. 만약 메시지가 여러 사람에게 전달된다면, 그들은 어쩌면 메시지를 잘못 해석할 수도 있고, 그들이 받은 판본이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서로 다투게 될 것이고, 메시지 전체가 파괴되거나 변질할 수도 있다.

이 한 사람이 계속해서 정보를 받을 수 있고, 그가 주변에서 충분한 도움을 받는다면, 이것이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것은 인류가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정보이므로, 이 정보는 큰 공동체에서 인류를 도우려고 하는 이들, 미래 인류의 자유를 걱정하는 이들이 전달해 주어야 한다.

인류가 혼자 힘으로 어떻게 큰 공동체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만약 이런 것들을 설명하려고 어떤 시도를 하면, 그것은 환상적으로 보일 것이고, 사람들이 앎으로 강하지 않는 한 스스로 그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행자들은 신비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행자들은 상황 보고에서 당신들에게 말한 것 외에는 자신들의 이력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서는 안 된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수상쩍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중함이다.

사람들이 당신의 첫 제안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첫 질문들에는 답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접촉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으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이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자기 내면에 있는 영적 지성인, 자신의 앎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직이 거의 없으므로, 진실로 정직한 것은 의심을 받을 것이고, 특히 스스로 비뚤어진 사람들에게는 비뚤어진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순수한 것을 더럽히거나 훼손하지 않고 세상에 전하는 것은 심지어 처음부터 사실 매우 어렵다.

이 메시지를 받도록 선택된 사람이 선택된 이유는 그가 세상에서 지위가 없고, 사회적 지위가 없으며, 이 메시지를 받을 준비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의문을 가질 것이고, 실제로 가지고 있다. 물론 그도 어떤 것들을 두려워할 것이고, 실제로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이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이 메시지를 받아서 순수한 형태로 전할 수 있기만 하면,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메시지가 순수한 형태이고, 사람들의 기대나 선호, 믿음에 맞지 않으므로,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이 메시지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토론과 의심이 있을 것이고, 많은 두려움이 새 메시지에 투사될 것이다. 특히 이 새 계시가 자신의 기존 이해와 어떤 식으로도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분명히, 사람들은 동행자가 많은 것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구원자이기를 원할 것이고, 구세주이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동행자가 개입하여 큰 공동체의 다른 어떤 세력도 지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기를 원할 것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배신당했다고 느끼거나 실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동행자들이 인류를 보호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해 보라.

만약 동행자들이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여기 왔다면, 그들은 인류를 계속 보호해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사실상 지구를 지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지구의 모든 정부가 동행자들의 활동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자유를 잃을 것이고, 그것도 친구에게 자유를 잃을 것이다.

동행자의 목적은 인류의 권한을 교묘히 뺏는 것도 아니고, 정부를 바꾸거나 국가들 사이 신의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단지 개입을 관찰하고 자신들의 상황 보고를 전달하는 것뿐이다.

당신을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도록 자신의 힘을 상대에게 넘겨줄 것이다. 동행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동행자들이 인간사에 개입하는 방문자들을 내쫓고 개입을 종식하기 위해 필요한 군대를 동원한다고 해도, 전쟁은 지구 국경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동행자들의 고향 행성조차 위협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행성이나 무역 연합과 같은 곳에서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지 않고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행자들이 지금 이곳에 와서 하고 있는 것을 실제로는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이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것이다. 지구에서도, 정부가 정보를 얻으려고, 좋든 나쁘든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려고 하면서 비밀 요원들을 둔다.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인류 자신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인류는 우주의 삶을 깊이 이해해야 하며,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우주의 삶에 접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사람들 대부분이 우주의 삶을 매우 낭만적으로 본다.

그들은 기술에 현혹되어 더 많은 기술을 원한다. 그들은 “접촉”으로 엄청난 혜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선진국들이 인류에게 평화롭게 사는 법, 환경을 유지하는 법,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법을 가르쳐 주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당신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알 수 없는 힘이 바꾸고 통제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방문자들은 이것들을 약속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렇게 약속하는 것이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방문자들은 사람들에게 “오, 물론 우리는 당신들에게 평화와 평정을 줄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단지 더 나은 기술을 주겠다고 약속하거나 세상의 평화와 평정을 약속한다고 해서, 당신은 당신 삶의 권한을 넘겨주고, 당신 삶과 환경이 완전히 통제받기를 원하는가? 감옥에는 모든 사람이 통제받으므로 평화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평화인가? 아니면 단순히 전쟁을 억제하는 것인가?

그리고 세상에는 개입으로 자신들의 재정 상태가 위협받을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부와 특권을 지키기 위해 개입에 저항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개입과 연합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개입과 연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나리오이며, 개입을 효과적으로 다루려는 이는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은 단순히 부정하고,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이것을 믿지 않아. 선진 문명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 그들이 여기에 있다면, 그들은 우리를 도울 수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을 환영해야 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단순히 이러한 것들을 숙고해 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개입의 현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우주에 생명체가 있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마 은하의 맨 끝에는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없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동행자들이 옳다! 우리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벙커를 짓고 지하에 살면서 무기를 비축하고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믿지 말자.”

그러므로 동행자 보고서가 과잉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분명히 부정이 있을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동행자 보고서를 분명히 비난하고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메시지가 지구나 어느 행성에 전달될 때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다.

여기서 불안과 비난 없이 진실이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자신의 메시지로 세상에 알려진 위대한 영적 교사들의 역사를 보라. 그것은 당신에게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된다. 소수의 사람에게 전달되고, 많은 사람은 분노한다. 동행자 보고서를 놓고 분노가 있겠지만, 소수의 사람에게는 전달될 것이고,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의 의식 속에 새로운 이해와 인식이 서서히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류는 큰 공동체에 대비해 총체적으로 준비되지 않았으며, 사실 상황이 상당히 절박해졌을 만큼 대단히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인류는 나라의 옥새를 거의 아무런 의심 없이 기꺼이 공개적으로 넘겨줄 것이다.

지구의 여러 민족의 역사, 지구 원주민들의 역사를 보라. 그들은 단순히 묵인하며, “오, 물론 괜찮다. 환영한다. 어서 오라. 우리는 여기서 살 것이니, 당신들은 저쪽에서 살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 새로운 이 시나리오는 정말 많이 다른가? 발견된 종족이 되고 새로운 세계의 원주민이 되는 것, 새로운 행성에서 가치와 부와 기회를 찾는 다른 이들의 방문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인류가 처한 곤경이 이와 같다.

그렇지만 이것이 큰 비극인가? 이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큰 비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사에 개입하는 큰 공동체 세력이 있는 것은 실제로 인류가 스스로 통합하고 자기를 방어하는 데 강력해질 수 있는 유일한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문화 간의 역사와 부족 간의 적대감을 극복하려면 이 정도 규모의 어떤 것이 필요하고, 사람들을 통합하려면, 더 큰 문제, 더 큰 어떤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불난 집에 있는 것과 같다. 만약 한 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 않고, 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을 싫어하는데, 집에 불이 난다면, 사람들은 서로 돕거나 아니면 괴멸한다. 세상은 불난 집과 같다. 환경이 파괴되고, 국가 사이나 문화 사이에 갈등이 계속 커지므로 세상은 불타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더 큰 불은 방문자들이 있는 것이다. 더 큰 불은 개입이다.

인류는 아직 충분히 제대로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다른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아직 개발하지 못한 기량을 지닌 지구 밖에서 온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가? 당신들은 자신의 뒷마당을 청소할 수 있고, 정부 구조를 바꿀 수 있으며, 천천히 큰 어려움을 겪으며 더 큰 정의를 세상에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낭만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희망찬 기대감이나 탐욕도 없이, 지구 밖에서 오는 지적 삶의 현실을 상대할 수 있는가?

당신은 객관적이고 정직하게 이 일을 다룰 수 있는가? 당신은 방문자들에게 “좋아, 만약 당신들이 여기에 온다면, 당신들의 정체와 의도를 밝혀야 하고, 우리는 당신이 여기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동행자가 상황 보고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류는 전 주민의 허가 없이는 어떤 외계 종족도 이 땅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현재 상황에서는 이 허가를 결코 요청하지도, 승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방문이 아닌 개입이다.

방문자들이 환영받는 데는, 그들이 방문 허가를 요청했고, 방문 대상자의 승인을 받고, 방문하려고 이곳에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입자들은 이런 승인을 받지 않으며, 당신들에게 억지로 들어온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 방문자들이 허락을 요청했지만, 그것을 지구 정부들이 거부했을지도 몰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설사 이런 경우라도 방문자들은 제 갈 길을 가야 하며,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지구 정부들이 실수로 방문을 환영하지 않더라도, 방문을 환영하지 않으면, 방문자들은 방문 목적이 정복하고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정복과 개입의 목적이 아니면 왜 그들이 이곳에 와서 인간사에 그렇게 깊이 관여하고 인간의 생리학, 심리학, 종교에 그처럼 지대한 관심을 가지겠는가? 당신은 그들에게 이러한 것들이 부족해서 방문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들이 당신들 도서관에서 책을 몰래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단순히 관찰자가 되어 당신들의 데이터, 정보, 전송 등 온갖 것을 수집함으로써 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을 알기 위해 인간사에 개입하면서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우리의 생식 능력이 필요하거나, 우리의 영성이 필요하거나, 우리의 정서가 필요하거나, 우리의 종교가 필요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고,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왜 국가들은 서로 개입하는가? 이점을 생각해 보라. 큰 공동체에서도 다르지 않다. 명백한 것을 놓치고 있다.

사람들은 이 명백한 것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 방식이 다루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어떤 사람들은, “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여기 왔다. 그들은 우리의 혈액 공급이 필요하거나, 우리의 종교가 필요하니, 우리는 그들을 도울 것이고, 그리하여 대단히 자부심을 느낄 것이며, 그들은 매우 고마워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신기술을 가져와 오염을 막는 데 돕기 위해 여기에 왔다.”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사람들과 정부가 이 신기술을 그런 방식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구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므로 우위를 점하고 힘을 얻기 위해 이 신기술을 가지려고 서로를 밟고 올라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우리를 연구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라고 말한다. 왜 그들이 당신들을 연구하고 싶겠는가? 그들은 당신들이 공중으로 보내는 방송을 수신하여 인간을 연구할 수 있다. 당신들의 정보는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들이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 여기에 올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인간을 연구하려고 하는가?

인간을 연구하는 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려고 하는가? 당신은 이것이 과학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문화 탐사라고 생각하는가? 인간을 연구하는 데 다른 종족이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만큼 인류가 그렇게 매혹적이고 경이롭고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큰 공동체에서 종족을 연구하는 유일한 이유는 경제적이나 정치적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종족들을 연구할 때는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당신은 누가, “우리는 당신을 연구하고 싶다. 당신은 남은 생애 동안 우리의 실험 대상이 되어 주겠는가? 우리는 당신을 해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

특히 조사하는 이들이 당신의 모든 것과 당신이 지닌 모든 것을 이용하려고 당신을 이용한다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었어도, 그것을 허락하겠는가? 많은 사람은, “방문자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왔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방문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여기에 왔다. 그리고 그들이 매우 쉽게 이렇게 하도록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다.

그러면 당신은, “왜 더 많은 사람이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여러 요소들을 다루어야 하므로 어렵다. 첫째는 사람들이 문화나 종교에서 길들여져, 이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견해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주에 지적 삶이 있는 현실을 실제로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점을 고려해 볼 때, 원시 생명체의 수준에서는 물론 인정하겠지만, 우주의 삶은 인류가 알 길이 없다. 박테리아는 괜찮지만, 인간사에 개입하는 지적 종족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지구의 정부들은 방어책이 없으므로, 아는 것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지구 정부의 방어책은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는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데, 그들은 대중인 자국민이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고 그러한 노력을 지지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당신 나라 정부가 공개적으로, “지구 밖에서 온 종족이 개입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기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의 활동을 모두 다 잘 알지는 못하며, 그들에 대한 방어책이 없다.”라고 발표하겠는가?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감당할 수도 없을 것이고, 받아들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도망쳐 어딘가로 숨으려고 할 것이며,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개입을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우리는 여기서 성급하게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 많은 사실을 모아야 하며,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런가? 왜 그런가? 당신은 그냥 이것을 보고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가? 당신은 작은 조각들을 서로 맞추는 데 여생을 소비할 것인가? 이것은 과학 실험이 아니다. 이것은 생명체 간의 상호작용이다.

만약 당신이 심각한 질병으로 진단을 받았다면, 실험실의 실험 대상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치료받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아마도 가능한 한 빨리 확실하게 치료받는 길을 원할 것이고, 만약 자신의 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라면, 모든 주의를 치료에 쏟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개입을 마치 과학 실험처럼 취급하며,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모든 것을 짜 맞추려고 하고, 틀릴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의 세계는 바로 그들의 발밑에서 훼손되고 있다. 그들은 개입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 결론들은 비과학적이고, 터무니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증거인가?

증거가 명확할 때까지 얼마나 많이 보아야 하는가? 개입의 특성이 은밀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은 많지 않다. 어쨌든 대낮처럼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면서, 당신은 증거를 모아서 짜 맞추고, 진실을 추구하는 길을 걷는다. 그런데도 진실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진실을 아는 것에 대해 양가적이다. 만약 진실이 무엇인지 정말로 안다면, 당신의 과학 실험은 끝나고, 당신은 이제 실제로 행동해야 하며, 실제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 동료들은 당신을 미친 사람, 제정신이 아닌 사람, 이성과 객관성을 잃어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입장을 취한 사람처럼 바라볼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이론적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만큼, 진실은 부정되고, 아무도 어떤 것을 아는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것은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해한다. 이것은 당신 자신의 죽음을 제외하고는 당신이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듣자마자 이것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게 항상 막는 그런 경향, 믿음, 태도를 다루어야 한다. 당신은 증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손쓸 방법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이제 방문자들이 정말로 모든 것을 장악했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가 이것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항의하겠는가?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쓰겠는가? 친구들에게 불평하겠는가?

이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보고 알려면 사람들은 여기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당신은 지구 국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도움이 필요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유럽 국가들 간의 복잡성과 경쟁을 이해할 수 있었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신비한 근원에서 오는 도움이 없다면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그 당시 천사의 현존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크고 비극적인 변화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리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그 원주민도 그것이 그들 세계관의 영역 밖에 있었으므로 응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나 이해와 맞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그러한 계시들이 대부분 거부되거나 무시되었다. 당신은 천사의 현존이 그저 모른 척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말살되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기를 원한다. 또 편안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보지 않으며, 보더라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전쟁이 그들을 덮칠 때까지 전쟁을 부인한다.

처음부터 분쟁의 불씨가 붙자마자 분쟁을 근절하기보다는 그 불이 자신에게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 우리는 이것을 멈춰야 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당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당신은 인식부터 하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상대하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지구인들의 명시적 허락 없이는 어떤 외계 세력도 지구의 영토 안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당신들에게는 이러한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여기서 우주의 삶을 매우 평범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별들을 보라. 별들은 물질이다. 이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천국이 아니며, 천국의 상태가 아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이는 물질적 삶을 살면서, 생존과 경쟁, 고난, 박탈 등 물질 삶의 어려움을 다루어야 한다. 기술은 이러한 요건이나 어려움을 종식하지 못한다. 사실, 기술은 상황을 훨씬 더 복잡하게 할 수 있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문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당신은 우주의 삶을 성숙한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만약 미숙한 관점으로 본다면,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해가 부족하면 정말 비극적일 수 있다. 인식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동행자 보고서의 목적이다. 즉, 인식을 확립하는 것, 모든 질문에 답하거나 당신에게 완전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주의를 환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와 관련된 당신의 모든 질문에 답한다는 뜻도, 심지어 다룬다는 뜻도 아니며, 당신이 어떤 것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동행자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고 매우 짧으며, 여러 면에서 매우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이 메시지는 인식을 일깨우고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여기 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동행자 메시지의 목적이다. 이 인식 외에도, 영적 이해가 더 깊어져야 하고, 정신 환경을 알아야 하며, 국가들 사이나 문화들 사이에 더 큰 협력을 기꺼이 구축하려고 해야 한다.

이것은 범세계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미국인이나 영국인, 중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개입자들은 어느 한 인종이 개입하는 자신의 의도가 성취되도록 돕는 경우 말고는 한 인종을 다른 인종보다 더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이 점에서 미국은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나라이므로, 미국에 많은 역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인간으로서 당신들은 도전받고 있다. 당신들이 지구에 있을 권리, 우주에서 자유와 자결권을 가질 권리가 도전받고 있다. 인간사에 개입하고 있는 이들은 인류가 스스로 통치할 수 없고 지구를 파괴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개입하는 것이 자신들의 권리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태도는 이렇다. “이 인간들을 보라! 이들은 짐승과 같다! 우리는 질서와 체계를 이곳에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오, 그거 훌륭하다! 드디어 우리도 질서와 체계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정말 이런 식으로, 이 정도까지 당신에게 강요하는 질서와 체계를 원하는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인류가 발전하거나 향상하는 방식이 아니며, 인류가 지구에서 협력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방식도 아니다. 당신은 점령당하기를 원하는가? 왜냐하면 당신이 직면하는 것이 바로 지구적인 거대한 점령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나는 이 일을 처리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에게 이 문제보다 더 중요한 다른 문제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처리하고 해결해야 하는 다른 일들이 있지만, 이 인식을 포기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 시기 이 세상에서, 당신이 삶에서 지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식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먼저 인식하고 난 다음, 우주의 삶에 관한 것들을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가? 대학교에서? 교회에서? 부모에게? 친구들에게? 신문에서? 아니면 잡지에서?

당신은 인류 역사를 통해 부분적으로 우주의 삶을 배울 수 있다. 지구가 어떻게 진화했고, 지구를 형성한 힘들, 국가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지를 이해하면, 우주의 삶도 다르지 않으므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우주의 삶은 단지 훨씬 더 큰 규모로 일어나고, 훨씬 더 다양한 영향력과 참여자들이 있을 뿐이다.

당신은 우주의 지적 삶을 매우 냉철한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기술이 당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기술은 단지 당신을 변화시킬 뿐이다. 기술은 우주에 있는 어떤 종족도 구하지 못했으며, 단지 그들을 변화시켰을 뿐이다.

물론, 기술로 다른 나라를 제압하고 지배할 수 있는 국가들이 있다. 그러나 이 침략국들은 기술로 스스로 변화를 겪었다. 큰 공동체에서는 기술 때문에 실제로 취약하게 된다. 만약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기술이 당신에게 있다면, 모두가 지금 당신에게 있는 기술을 원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그 기술을 지키고 보호할 것인가? 그것은 지구에서도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이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부와 특권을 보호하는가? 이것은 그들의 삶, 그들의 친구, 그들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바꾸고, 그들의 삶을 정말 비참하게 할 수 있으며, 종종 그렇게 된다.

큰 공동체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려면, 자급자족하고 독립적이며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이것은 더 큰 규모의 지혜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인류 자체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이것이 어떻게 해서 사실일 수 있고 왜 사실인지, 이해할 수 있다. 방금 십억 원에 당첨된 사람이 밖에 나가서 모두에게 알리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신중함과 분별력은 매우 중요하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서로 다른 역량을 지닌 국가들이 상호작용할 때 일어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이것은 명백한 운명이고, 이런 식으로 되어야 하며, 원래 그런 것이다. 이것은 바뀔 수 없다. 그리고 어쨌든 이런 식으로 일어났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것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었고, 여러 다른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역사가 과거에 일어난 대로 되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훨씬 더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와 문화와 심리학을 공부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새로운 정보, 새로운 관점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새로운 정보보다는 더 큰 관점이 당신에게 더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항상 보는 방식으로 사물을 본다면, 항상 보던 것만 보일 것이다. 그러면 어떤 새로운 것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사실을 얻으려면,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다른 관점이 없으면, 마음은 단순히 이미 믿고 있는 것을 보호하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무엇이든 방어하거나 맞서 싸운다.

새로운 영적 관점과 우주의 영성에 대한 이해는 큰 공동체 영성의 가르침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창조주의 이 선물을 받기보다는 “이것은 모두 한 사람에게서 온 것이다. 그는 매우 부유하고 강력해질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우리는 그가 실제로 죽임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통해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 축복인가? 사람들에게 비방과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신격화되는 것이 정말 축복인가? 그런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큰 부담이고 큰 희생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때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익명성이지만, 조만간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므로 자신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이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어떤 것이 자신에게 실제로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에 빠진다. “누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악마와 노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만약 그가 천사들과 어울린다면, 왜 그 사람이 내가 아닌 그가 되어야 하는 거지?” 메신저가 되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큰 도움이 필요하다. 큰 도움이 없으면 그 일을 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을 깊이 신뢰해야 하고, 창조주를 깊이 믿어야 하며, 자신이 올바르게 인도받는지 잘못 인도받는지를 아는 큰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물론 자신의 돈이나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큰 개인적 갈등 없이는 그런 위치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새로운 정보, 새로운 관점인, 큰 공동체 관점이 필요하다. 당신은 단순히 이웃이나 그 고장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큰 공동체에 사는 사람처럼 생각해야 한다.

관점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관점, 특히 이와 같은 큰 관점을 얻게 되면, 당신은 이전에는 분명하지 않던 것들을 보고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추측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관찰에 기반을 둘 것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은, “당연히 우리 허락 없이는 누구도 우리를 방문해서는 안 돼!”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글쎄, 나는 잘 모르겠어.”라며 그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느 시점이 되면, 영적으로 진보한 종족들은 다른 종족의 세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된다. 그들은 인류의 동행자와 같은 관찰자들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수는 있지만, 개입하지는 않는다. 우주에서 영적으로 진보한 이들은 그들의 문화나 그들의 세계, 그들의 기질, 그들의 본성에 상관없이 개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혜이고, 지혜는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저 우주선을 타고 빠르게 이곳에 올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적으로 그들이 영적으로 진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이다. 그래서 당신이 큰 공동체의 관점을 지니면, 현자들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깨닫게 된다. 현자들은 여기 와서 모든 것을 바꾸지 않는다.

진화하는 종족에게 유전자 물질이 전해지는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 장담하건대 그것은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성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인류에게는 선진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며, 외계인의 유전자 물질이 필요하지 않다. 당신에게 이와 다르게 말하려고 하는 이는 개입자의 일원이거나 자신도 모르게 개입자를 지지하고 있다.

인류에게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신과 인류의 내면에는 영적 마음인, 앎의 씨앗이 있다. 이 앎은 태곳적부터 당신과 항상 함께 있었다. 당신이 앎을 발견할 수 있다면, 앎은 당신이 알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지금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큰 공동체를 이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우리가 큰 공동체라고 하는 우주의 삶과 인류가 접촉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이해는 이미 당신 내면에 있다.

만약 어떤 외계 종족이 당신에게, “우리는 당신의 유전암호를 향상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이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실험용 동물이 되기를 원하고, 점령자에게 지배받기를 원하고, 이것이 우주의 삶과 접촉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당신 생각을 바꾸겠는가? 점령당하고 나서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맙소사! 나는 더 이상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며 손쓸 방법이 없다.”라고 말할 것인가?

이것이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신이 응답했고 그 응답이 가르침으로 전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대담한가? 이것이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신이 응답했고 그 응답이 한 사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대담한가? 그 응답을 달리 어떻게 전하겠는가? 백 명에게 전하겠는가? 만약 그리한다면 그 메시지는 결코 그들을 넘어 더는 전해지지 못할 것이다.

예수가 왔을 때, 백 명의 예수가 모두 서로 경쟁했는가? “우리 예수는 진짜지만, 당신 예수는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효과가 없으므로 세상에 계시를 전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 너머에 있다. 우리는 천사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담한 것을 말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그로 인해 생긴 파장을 다룰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람들은 그 메시지로 난리를 치든 교화가 되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곳에 있어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메신저는 다르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반응을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이 당신에게 부여되지 않은 것에 기뻐하라. 하지만 당신이 자각하게 되면, 당신도 이 인식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라. 당신은 메신저가 겪는 어려움은 겪지 않겠지만, 우리가 말한 모든 것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개입의 영향을 볼 것이고, 회유책의 영향력을 볼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얼마나 비판적인지, 얼마나 많이 부정하고 사는지 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든 분노와 모든 의심, 모든 두려움과 모든 회피를 볼 것이다. 그것은 대낮처럼 분명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세상에서 계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할 것이다. 메시지가 전해져야 하고 시간이 관건일 때, 이때 계시가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어려움이고, 도전이다.

개입이 진짜 문제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진짜 문제는 개입에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책임(response-ability, 응답 능력), 응답하는 사람들의 능력이다. 응답의 결여, 무지한 응답, 부정적인 응답으로 사람들이 응답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넘어갈 것이다.

이곳 지구에는 방문자들이 많지 않다. 그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일은 인간의 묵인과 무지로 쉬워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응답, 응답하는 능력, 책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쉬워지고 있다.

책임(응답 능력)이 없다면, 사람들은 응답하지 못할 것이고, 점령은 바로 그들 발밑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오, 무슨 일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확실히 변하고 있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알아낼 때까지는 괜찮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긴급한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인식이며, 그다음으로 큰 공동체 삶을 배워야 한다. 당신은 지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큰 공동체 삶을 배우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런 다음 큰 공동체의 관점을 얻기 시작하고, 우주의 삶과 우주의 영성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지금 큰 공동체 영성의 가르침에서 전해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이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많은 곳에서 충분히 많은 사람이 이 가르침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만약 인류가 정보를 얻고 인식한다면, 내일 당장 개입을 끝낼 수 있다. 만약 인류가 정보를 얻고 인식하고 통합한다면, 이러한 종류의 미래 개입을 막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너무 몰두해서 그들의 국경은 무방비 상태이다.

아, 물론 사람들에게는 서로 경계가 있으며, 서로에 대한 엄청난 경계, 장벽, 저항, 적대감이 있다. 하지만 우주와의 경계는 무방비 상태이다. 인류에게는 안으로 들어오는 외부인을 가로막을 장벽이 없다. 왜냐하면 인류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거나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용기와 신뢰, 정직이 필요한 시기이다. 당신의 내면에서 정말로 정산해야 할 때이다. 동행자 보고서를 읽고, “내가 정말로 무엇을 아는가?”라고 자문해 보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혹은 “내가 무엇을 선호하는가?” “내가 무엇을 믿는가?”가 아니라, “내가 여기서 정말로 무엇을 아는가? 정말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 보라.

할 수 있다면, 당신 내면에 있는 앎에 문의하라. 당신의 생각이나 두려움, 믿음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더 깊은 것에 문의하라. 그곳에서 진정한 확인을 해줄 것이다.

이 인식은 당신 삶을 바꿀 것이므로, 이것을 묻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인식을 통해 당신은 자유로워질 것이고, 방향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기꺼이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각각의 사람들 내면에서 일어나는 계시이다. 계시는 많은 저항을 받고, 많이 지연된다. 하지만 계시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에게 우리의 축복을 보내며, 당신이 이 조언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숙고해볼 것을 요청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결정은 당신이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려줄 수만 있고, 통제할 수는 없다. 교사들의 현존이 당신과 함께 있다.